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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2년 차 개발자의 회고: 나는 왜 성장하려고 할까?

만 2년 차 개발자의 회고: 나는 왜 성장하려고 할까?

들어가며

2023년 4월 4일 신입으로 입사한 후, 두 번째 연 회고록이다. 연차가 쌓인다는 것은 좋으면서도 달갑지만은 않다. 기회는 많아지지만, 그만큼 책임과 기대도 커진다. 하지만 연차가 쌓이는 만큼 회사에서는 나에게 당연한 수준과 책임, 실력을 기대한다. 나는 개발자로서의 역량이 연차보다 빠르게 쌓이고 있을까? 이번 회고를 하며, 신입을 벗어나기 위해 성장에 대해 고민하는 주니어 개발자의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성장이 뭘까?

입사할 때부터 항상 고민했던 주제이다. 과연 성장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명쾌하게 해줄 수 있는 개발자는 몇 명이나 있을까?

성장 이라는 단어는 개발자로 살아가다보면 정말 많이 듣게된다. 그리고 그들은 “성장” 이라는 단어에 매몰되어 쉬지 않고 학습한다. (물론 내 주변엔 그렇지 않은 개발자들이 훨씬 많다.)

그렇다면 성장 == 학습 인걸까?

참고로, 나는 성장 == 학습의 마인드로 2년을 지내왔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하게 답할 수 없다. 내가 걷고 있는 길에는 입구나 표지판이 없다. 그저 길 위에 걷고 있는 나로써는 이 길이 성장의 길인 지 시간만 낭비하는 트레드밀인 지 알 방법이 없다.

image 그 길을 나보다 먼저 걸어본 사람이나, 그 길에 대해 잘 아는 사람만이 내가 걷는 길이 무슨 길인 지 알려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회사에는 아쉽게도 그런 사람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다들 연차가 쌓이고, 연봉이 오르기만을 고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겨우 2년 된 나의 오만과 착각일 수도 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저 내가 가는 길이 성장의 길이라고 믿고, 혼자 외로이 앞만 보고 갈 뿐이었다.

그 결과, 나는 길을 잃었다.

길을 잃다

내가 걷던 길이 성장의 길이었는 지 아닌 지는 확신할 수 없다. 효율적으로 걸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길을 지나오기 전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아진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길을 잃었다. ‘이 길이 진짜 성장의 길일까?’ 라는 생각에 휩싸였고, 자주 멈추고 뒤돌아봤다. 나 혼자 무작정 믿고 가기엔 연차와 나이가 무서운 속도로 쌓이며 두려움도 커졌다.

나는 길에 대해 아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길을 같이 걸을 사람이 필요했다.

항해

혼자 하는 성장(학습)에 한계를 느꼈고, 길에 대해 알려줄 사람과 같이 걸을 사람을 구하기 위해 그 방법을 찾아다녔다. 결국 24년 12월부터 25년 3까지 항해플러스 라는 직장인 부트캠프를 수료했다.

참고로, 이 글은 항해플러스를 홍보하기 위한 목적이 전혀 아니다.

우선 이 과정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다고는 했지만, 사실상 직장인을 고려하지 않은 부트캠프였다. 회사를 다니며 진행하기 매우매우 힘들었다. 무슨 생각으로 커리큘럼을 이렇게 만들었는 지 모르겠다. 거의 10주간 매주 하루 씩은 밤을 샜고, 연차를 썼던 것 같다. 특히나 마지막 3주간은 지속되는 야근 속에서 과정을 버텨냈다.

과정에서는 테스트 코드, 동시성 제어, 클린 아키텍처, DB Lock, Redis, kafka, k6, grafana 등등 10주만으로는 도저히 습득할 수 없는 다양한 기술과 도전들이 주어졌다. 수료 후 한 달이 지난 오늘 생각해보면, 그 과정 속에 학습했던 것들에 대해 주요 골자만 기억나고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학습 내용보다 훨씬 중요한 것을 남겼다.

바로 사람이다. 내가 이 과정을 비싼 돈 내고 신청했던 건 길을 아는 사람길을 같이 걸을 사람이 필요해서였다. 그저 기술 스택을 학습하기 위해서라면 그냥 인프런 강의를 들었으면 됐다. 이 과정을 헤쳐나가며 많은 개발자와 소통하고, 의견을 나누고 함께 고생했다. 그리고 놀 땐 재밌게 놀며 많은 추억을 쌓았다. 길을 아는 코치님들과도 많이 소통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많이 충족했다.

나는 그저 길이 너무 넓어서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못 봤던 것이다. 우리 모두는 제각각의 입구에서 출발하여 하나의 길을 향해 각자의 속도로 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성장의 길은 결국 하나다

항해를 마치고 나는 전혀 다른 길인 줄 알았던 여러 갈래의 길들이 결국 하나로 합쳐지는 큰 길이라는 걸 깨달았다. 좀 더 빠른 길과 조금 돌아가는 길, 그리고 많이 돌아가는 길이 있을 뿐이다. 결국 이 길들은 하나로 합쳐진다. 그리고 각각의 길에는 다른 사람, 기회, 즐거움, 장애물이 있을 뿐이다.

나는 이전에 성장의 길시간 낭비의 길 두 갈래로 이분법적으로 생각했다. 지금은 어떤 길이든 간에, 일단 걷기 시작하면 성장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길로 가든 제자리에 멈춰있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낫다. 그리고 나는 내 길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으려고 한다. 멈춰서 돌아보지 않으려고 한다. 피드백이 필요하다면 내가 걷는 길 위에 동료와 멘토를 데려오는 것이 맞다. 멈춰서 돌아보는 시간은 아깝다.

내가 원하는 성장

신입으로 취업할 때,면접 질문으로 종종 이런 질문이 있었다.

어떤 개발자가 되고 싶으세요?

그럴 때마다 나의 대답은 정해져있었다.

사수든 부사수든 같이 일하고 싶어하는 개발자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내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된 사건이 있었다.

나는 개발자로 돈을 번 지 만 2년이 되었고, 그 동안 몇몇 개발자들과 함께 일했다. 그 중에 나보다 겨우 몇 개월 늦게 신입으로 들어온 동료가 한 분 계셨다.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이었다. 회사 프로젝트 특성 상, 그리고 내 연차가 반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사수까지는 아니고 동료 개발자였다. 이 분이 최근에 사정상 퇴사를 하셨는데 나에게 쪽지를 남겨주셨다. 원문을 모두 인용하긴 좀 그렇고, 한 문장만 인용하겠다.

처음 개발자로 입사해서 호민씨 같은 사수를 만날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이 분을 부사수라고 생각해본 적이 1도 없었다. 사수든 아니든 이러한 얘기를 들었다는 것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는 회사에서 하는 개발과 코딩이 자아실현이 되지 않아 힘들었고, 매너리즘이 왔었다. 이 쪽지로 나는 개발자로서 처음으로 자아실현을 느껴봤다.

이 얘기를 들음으로써 나는 내 커리어 목표에 한 발자국 나아갔다. 내가 성장하기 위해 학습하고, 공유하고, 도와줬던 것이 동료에게 귀감이 되었다. 누군가는 그저 학습하고 개발 잘하고 머리속에 아키텍쳐가 자유자재로 그려지는 걸 목표로 성장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같이 일하고 싶은 개발자가 커리어 목표이고, 이를 위해 성장한다. 내가 원하는 성장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더 이상 내가 걷는 길을 의심하지 않으려고 한다.

마무리

성장이라는 키워드는 정말 추상적이고 누구도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 정답이 없는 것이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이번 회고를 통해, 내가 생각하는 성장의 정의를 어느 정도 내릴 수 있었다.

원래는 성장에 대한 얘기 뒤에 회사 상사를 답답해하고, 비판하는 챕터를 작성 할까 했다. 그런데 성장과 길, 커리어에 대해 작성하며 고민하다보니 그런 비판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그들도 그들만의 생각과 커리어 목표를 가진 채 길을 걷고 있을 것이고, 나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을 비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글이 KPT 같은 진정한 회고 보다는 내 마인드셋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나는 이 글을 작성하며 KPT 이상의 무언가를 얻었다. 사실 KPT 회고를 몇 번 해봤는데 잘 지켜지지도 않았다. 할 때마다 똑같은 KPT가 반복될 뿐이었다.

나는 이번 회고를 통해, 진정으로 나를 되돌아보고 내가 가야할 길을 찾았다. 그러면 회고의 역할을 톡톡히 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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